김유호 국립농업과학원 기술지원과 연구관
김유호 국립농업과학원 기술지원과 연구관

백색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설농업이 도입된 지 30여 년이 지났다. 농업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여전히 기술투자는 계속돼 우리 농업의 모습은 상전벽해가 따로 없을 정도다. 시설재배 초기에는 천창이나 측장을 열고 닫거나 온도를 조절하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생육상황까지 측정해 알려주는 인공지능이 적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반해 노지 농업의 발달은 조금 늦은 게 아닌가 싶다. 기계화가 도입된 것이 1970년대인데 아직도 기계화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노지 농업은 작목 선택부터 외부환경 등 고려해야 할 조건이 매우 많다. 최근 자율주행으로 정지작업을 하고 모내기를 하기도 했으나 아직까진 시범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노지 농업도 디지털화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시설농업과 같은 수준까지 올라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천천히 하지만 묵직하게 변화의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노지 디지털농업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작목 선정이 이뤄져야 한다. 시설농업과는 달리 작목에 따라 재배양식, 환경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콩’에 디지털농업을 적용시켜보자.

콩은 파종, 재배, 수확과 수확후처리를 거쳐 가공에 이른다. 재배기술은 생육 관리, 물관리, 병해충 관리기술로 나눌 수 있다. 최근 논 타작물 재배를 통해 논콩을 많이 재배하고 있는데, 논에서 밭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물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물 빠짐을 좋게 하려면 배수가 우선이지만 가뭄 때는 따로 물 공급도 해야 한다. 밭작물의 물 공급은 벼농사 물대기와는 전혀 다르다. 고랑 사이로 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프링클러를 이용하여 지상에서 뿌려주거나 땅속에서 방울물주기(점적관수)하여 뿌리에서 흡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토양의 수분을 측정해 관·배수하는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콩 재배과정에서 또 하나 골치 아픈 것이 잡초와 병해충이다. 잡초를 발생 초기에 잡기 위해 비닐 멀칭을 하고 있으나 요즘처럼 인력이 부족할 때는 맞지 않는 방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멀칭하지 않고 파종과 동시에 제초제를 사용해 잡초 발생을 억제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덧붙이자면 많은 비로 인해 두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두둑을 다져주는 기능까지 겸비했다.

병해충 방제는 포집기를 설치해 포집 상태를 컴퓨터로 보고 기계적으로 판단하여 방제 여부가 결정된다. 해충 방제는 하향풍이 강하고 날림이 적은 신기술 드론으로 하는데, 이것이 바로 디지털과 기계화의 융합이다.

콩 생산에서 무엇보다 해결해야 할 과제는 수확후처리다. 이는 벼를 벤치마킹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91년부터 도입된 미곡종합처리장(RPC, Rice Processing Complex)은 벼 수확후처리 작업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벼를 수확한 후 모든 공정을 종합적으로 처리해 농업인의 노동력은 덜어주고, 수확후 품질 관리는 철저히 할 수 있어 벼 생산성이 높아졌다. 벼와 마찬가지로 콩 수확후종합처리장(SPC, Soybean Processing Complex)이 도입된다면 가을철 농업인의 일손을 덜고 콩 생산 경쟁력 제고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종합처리장이 완성되면 생산에서 유통까지 생산 이력을 확실하게 관리할 수 있는 블록체인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지난달 콩의 수확후 관리기술에 이르기까지 디지털과 기계화 연시회를 열어 기술 보급 촉진의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이를 통해 기반 기술 분야와 작물 분야의 협업이 노지 디지털화와 실용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디지털과 기계화가 융합해 종합적인 기술이 완성되면 노지 디지털농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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