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기계의 경미한 구조변경에도 종합검정을 다시 받아야 되느냐는 문제로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규제와 혁신이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따라서 생산·소비자 이익에 부합하는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례의 발단은 기존 생산·보급하고 있는 양파수확기에 마늘수확이 가능한 ‘흙털림 회전축’ 하나가 추가된 제품을 개발했으나 또 다시 종합검정을 받도록 하는 규정 때문에 출시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다. 이 제품은 마늘의 뿌리가 깊게 자라는 작물의 특성상 흙털림이 중요하다는데 착안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집적된 혁신제품이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한 대의 농기계로 양파와 마늘 두 작목의 수확작업이 가능하여 농기계 구입부담을 반감시킴으로써 생산비 절대액을 절감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반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농기계 생산업체는 현행 검정제도의 개선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이 제품에 대한 종합검정을 피할 방법은 없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정부지원대상 농기계로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례는 양파수확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같은 제품에 절단날, 배토판, 회전축등 옵션장치를 개발할 때는 물론 심지어 수확기의 굴취폭 몇 cm, 파종기의 파종구 숫자등 부분적 미세한 변경에도 모델별 종합검정을 반드시 필해야만 한다.

물론 규제가 필요한 장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만능이어서는 안된다. 규제란 일부 개인 또는 집단의 특정 활동을 제한함으로써 다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다. 농업기계의 검정 역시 구조·안전·성능·조작의 난이도등 기준에 부합하는 농업기계를 농가에 보급함으로써 안전과 성능을 보장하여 농업생산성을 제고코자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혁신을 저해하는 수준이라면 반드시 제동을 거는 게 옳다. 기업이 새로운 제품개발등 창조적 혁신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의 규제완화가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필수조건이 된다는 견해가 꾸준하고 강력하게 대두돼 왔음에도 관료체제의 경직성 때문에 불필요한 규제나 제도를 답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관료사회가 유연해져야 한다. 그래야 논쟁의 핵심인 검정제도에 있어서도 융통성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적극행정’제도도 도입취지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 제도는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토록 하되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오가 사익(私益)에 저촉되지 않는 한 면책혜택을 주고 재량권을 폭넓게 부여함으로써 소위 ‘복지부동’의 행태를 근절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농축산관련 공직자들도 정책수립이나 시행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시행착오나 자신에게 돌아 올 불이익등을 우려하여 좌고우면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소극적 자세에서 탈피해야 한다. 수확기 생산업체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제품의 기본성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구조변경이나 옵션의 경우 굳이 종합검정을 필해야 하는지를 엄중히 재검토해야 한다. 이의 개선이 실현되어 정부지원대상 농기계로의 진입을 원활히 하고 개발의욕을 고취하는 동시에 농가의 농기계구입부담을 완화하고 생산성을 제고할 수 있다면 이의 보완을 늦출 까닭이 없다.

매사 때가 있는 법이다. 실기(失機)는 상상을 초월하는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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