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농업기계화연구소장
전 농업기계화연구소장

미국 유전자 연구팀이 쌀의 유전자와 분사시계를 분석한 결과 8,200여 년 전부터 벼가 재배되었다고 한다. 한반도는 청주시 옥산면에서 1만5000년, 김포에서 4,000년 된 탄화미 발견을 감안하면 우리는 적어도 4,000여 년 전부터 쌀농사를 지어왔다고 볼 수 있다.

쌀농사를 수천 년 동안 지어왔지만 쌀이 우리민족의 주곡으로 자리 잡은 것은 200년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간 쌀은 귀족과 왕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백성은 보리와 잡곡이 주곡이었다.

쌀은 탄수화물이 주성분이면서 단백질, 지방산, 비타민, 식이섬유, 미네랄 등 다양한 영양분이 포함되어 있으며, 매일 먹어도 거부감이 없다. 그리고 쌀농사는 매년 연작을 해도 무리가 없는 기적의 작물이다. 그간 주곡이 되지못한 이유는 쌀농사가 보리, 밀, 조, 수수 등 잡곡에 비하여 수확량이 많지 않고 잡초 제거, 물 관리 등 재배의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쌀이 우리민족의 주곡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것은 모내기(이앙법)라는 새로운 재배법이 시작되면서 부터이다. 중국은 12세기 남송 시대에 이앙법이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한반도는 고려사에 공민왕 때 모내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고, 1429년(세종11년) 편찬된 농사직설에 벼 심는 방법을 수경(水耕), 건경(乾耕), 삽종(揷種), 한도(旱稻) 또는 산도(山稻)로 설명한 것을 보면 14세기 고려후기나 그 이전에 모내기가 시작되어 18세기 중반에는 전국적으로 이앙법이 전파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698년(숙종24년)과 1838년(헌종4년)의 기록에 수리조건이 불비한 곳은 삽종을 왕명으로 금하여 삼남지역 등 물관리가 원활한 일부지역에서 모내기를 실시하여 쌀 생산이 미흡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20세기 조선후기에 수리조건이 개선되면서 쌀농사의 모내기가 일반화 되고, 이때부터 쌀이 주곡으로 자리 잡아가게 된다. 이 당시 이앙법은 직파에 비하여 소요 노동력이 20% 정도로 경작 능력이 4배로 증가하고, 수확량이 2∼3배 늘어나는 등 이점이 있어 농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새로운 영농방법이라고 하였다. 모내기로 생긴 여유 노동력은 인삼, 담배, 목화, 채소 등을 재배 판매하고, 2모작 농사로 생산물이 늘어나고 공인들 등장으로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조선후기 사회를 통째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모내기는 무논에서 허리를 굽혀 맨손으로 일정량의 모를 일정한 간격과 깊이로 심는 힘든 일이면서 보리수확과 겹치는 시기로 짧은 기간에 끝내야하는 작업이다. 그간 품앗이 등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모를 심어왔지만 농촌의 고질적인 노동피크를 형성하여 매년 공무원, 학생 등이 노력동원으로 모내기를 도와 왔다.

1970년대 들어와 산업화, 도시화로 농촌 노동력 크게 감소하여 모내기 때 노동피크가 심화되고 농촌 노임이 상승하여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정부는 모내기 작업의 기계화를 추진하였다. 그 당시 모심는 기계는 개발이 어려워 꿈의 기계로 일컬어왔으며 농기계 개발의 종착역이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에서 1960년대에 동력이앙기를 개발하여 1970년대에는 농촌에 보급되어 모내기의 기계화가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동력이앙기를 도입 공급하려하니 일부에서 기계 이앙은 못자리 방법이 다르고 어린모를 이앙하여 활착 부진 등으로 수확량이 감소하는데 석유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석유를 사용하는 비싼 농기계를 공급하려 한다고 반대 여론이 많았다.

이를 무릅쓰고 1977년에 일본에서 동력이앙기 완제품 53대를 도입, 이앙기계화 시범단지 34개소를 조성하여 기계 이앙을 시작하였다. 강원도 철원에서 1977년 6월 동력이앙기 모내기 시연회를 실시하는데 한 할머니가 기계가 모심는 것을 보고 손뼉을 치면서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고 하여 왜 그런 말씀을 하느냐고 물으니 내가 농촌으로 시집와 내 손으로 모를 심어야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기계가 모를 심어주니 뭘 더 바랄게 있느냐고 말씀하여 기계 이앙의 위력을 실감하고, 쌀농사의 획기적인 기술 발전이라고 판단하였다.

동력이앙기는 가격이 비싼 반면에 연간 사용기간(약 7일)이 짧아 우리나라와 같은 소농체제에서 농가가 동력이앙기를 구입하기 어렵고, 상자육묘로 못자리 방법이 달라 농민이 기계이앙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동력이앙기를 어떻게 농촌에 보급하느냐가 문제였다. 동력이앙기 1대가 연간 5정보 정도 모를 심을 수 있는 것을 감안하여 농가 중심의 농기계 공동이용조직을 통하여 동력이앙기의 지원 공급을 시작하였다.

1980년까지 4년간은 일본에서 만든 보행용 동력이앙기 1만1,000대를 도입 보급하여 벼 이앙면적의 7%를 기계 이앙하였다. 1980년대 초 부터 동력이앙기의 국산화를 추진하여 보행용 동력이앙기는 1980년대 중반에 승용 동력이앙기는 1990년대 중반에 완전 국산화하여 국내 고유모델을 공급하게 되었다. 2000년에는 동력이앙기 34만2,000대로 벼 이앙면적의 98%를 기계 이앙하여 이앙기가 공급된 지 25년 만에 특수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내기의 완전 기계화를 달성하는 쾌거를 올렸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승용 대형 동력이앙기 확대 공급으로 모내기 작업이 고 능률화하는 동시에 정밀성과 운전자의 조작 편이성을 높이기 위하여 GPS를 기반으로 한 직진 자율주행 등 자동제어장치가 부착되어 발에 흙을 묻히지 않고도 편하게 능률적으로 모내기를 할 수 있게 되어 10a당 이앙 작업 노동투하 시간이 1980년 23.8시간에서 2016년에는 1.3시간으로 대폭 절감돼 모내는 시기의 고질적인 노동피크를 완전 해소하고 적기 모내기를 하고 있다.

농가인구가 총인구의 4.7%로 급감하고, 65세 이상 농가 인구가 42.5%로 초 고령화된 현시점에 들녘에 나가 허리를 굽혀 모내기 하라면 누가 하겠는가? 모내기 등 쌀 농사 농작업이 모두 기계화되어 주곡인 쌀을 자급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쌀을 우리민족의 주곡으로 만든 것은 모내기이고, 쌀을 자급하게 된 것은 기계화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하여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지능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한 지능형 디지털 이앙기가 조속히 개발되어 무인 이앙기가 스스로 판단하여 농업환경에 알맞은 모내기를 하는 미래가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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