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기계산업이 안고 있는 현안들을 보면 ‘난마(亂麻)’ 그 자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여 무엇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모든 문제가 얽히고 설켰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방임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농기계산업의 몰락을 수용하겠다는 의사에 다름아니다.

우리는 당장 농기계 유통현장에 만연돼 있는 과도한 출혈경쟁이라는 전염병을 치유하고 걷어내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러자면 농기계산업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유통주체인 농기계 대리점들의 자정(自淨)이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홀로서기를 통해 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산업체는 생산기능을 하고 유통업체는 유통기능을 수행하는 형태로 사실상 경영의 분업화가 이루어졌음에도 유통주체는 지금껏 종속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산업체의 독단적 횡포에 휘둘려 필사적 생존 수단으로 출혈경쟁이라는 최악의 반복적 선택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생산업체들의 패악(悖惡)은 최근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농기계 생산업체들이 농협 농기계은행 사업용 농기계 입찰에서 무려 정가의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응찰하는 사례가 다반사다. 정확한 응찰가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이는 공개 된 비밀이다. 명약관화한 것은 생산업체가 농협에 광폭의 할인여력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대리점이 상상을 초월하는 농협의 할인판매에 맞서기 위해서는 종전보다 더 강도 높은 출혈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된다. 실탄의 부족사태는 불문가지다. 따라서 대리점은 생산업체에 SOS를 칠 수 밖에 없다. 생산업체가 이에 응하여 영업비용을 확대 지출하기 위해서는 농기계 가격인상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단 역시 없다. 따라서 농기계가격에 거품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거품이 자그만치 30% 수준에 이른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악순환의 반복을 자초한 당사자는 생산업체의 최고 결재권자다. 물론 거대 자본을 무기로 현금에 목말라하는 농기계 생산업체의 약점을 노리고 최저가 입찰제를 도입하여 농간을 부리는 농협의 원죄를 묵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빤히 보이는 술수에 놀아 난 최고 결재권자들의 행태 또한 비난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게 사실이다. 농기계 생산업체에서 상상이상의 저가 응찰권한을 가진 임직원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최고 결재권자만이 이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최고 결재권자가 직접 응찰가를 낮추는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꼴이다. 이같이 목전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적 사고의 이들 최고 결재권자가 과연 농기계산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끌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그 의식수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최고 결재권자들에게 농기계산업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면 유통주체가 분연히 일어서야 한다. 농기계 대리점이 생산업체와 종속관계가 형성된 것은 상당기간 거슬러 올라가야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농기계 보급초기 즉 정부의 농기계 국산화 계획에 따라 종합형 농기계업체가 지정되고 각 업체마다 전국 시군에 대리점을 설치할 때만 해도 농기계 생산이 수요를 따르지 못했다. 때문에 농기계 공급권의 키를 쥐고 있던 생산업체의 권위에 대리점이 짓눌려 옴싹달싹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180° 양상이 달라졌다. 공급이 수요를 월등히 앞질음으로써 대리점이 과거와 같은 양태에서 탈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된 것이다. 생산 업체·대리점간 수직관계가 수평관계 수준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리점이 서둘러 구심체를 구축해야 한다. 결속하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농기계산업의 유지·발전을 저해하는 어떤 장애에도 맞설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암덩어리와 같은 농협농기계은행산업에서 야기되는 불합리를 제거 할 수 있도록 일전도 불사해야 한다. 우선 반값 응찰을 기필코 차단해야 한다. 과당 출혈경쟁의 원인제공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리점 판매 수수료를 적정화해야 한다. 이렇게 실현만 된다면 생산업체는 30%가 넘는 영업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농기계가격의 거품도 당연히 사라지게 된다. 특히 생산업체 재무구조의 견실화를 통해 R&D투자를 확대함으로써 품질·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유통주체의 결속에 머뭇거릴 시간도, 까닭도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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