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산업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야?” “뭐가 어떻게 돼? 농협 농기계은행사업 당장 접지 않으면 끝이지. 완전 망하는거야!”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농기계산업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이 중단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을 대변하는 것이다.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은 시행초기만 해도 형평성문제, 전체 농가의 10%미만에 그칠 것이라는 수혜대상 등 실효성 논란이 야기됐음에도 불구하고 농업인의 부채탕감이라는 명분 때문에 큰 저항없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더욱이 임대사업에 매달려 있는 동안은 농기계업계 누구도 불만을 표출하거나 우려의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동기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매취사업으로 신규농기계를 구입하면서 야기됐다. 특히 최저가 입찰이 발단이었다. 수요자인 농업인들의 선택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등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농협은 이를 감행했고 벼랑 끝에 내몰린 농기계생산업체는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이에 끌려갔다. 사실상 거대자본 농협의 갑질이 발동한 것이다. 갑의 횡포 중 하수에 속하는 저질행위가 을의 약점을 최대한 악용하는 일이다. 농기계업계의 가장 큰 약점은 시장의 장기침체에서 비롯된 ‘자금난’이며 자본의 영세성이다. 이 아킬레스건을 자극할 경우 을이 다소 불리하더라도 갑의 요구에 응할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것이다.
을이라고 이같은 갑의 속내를 간파하지 못했을 리는 만무다. 극도로 악화된 경영환경이 갑의 ‘싫으면 말고’라는 배짱을 압도할 힘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인고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업계가 뭉쳐 이를 보이콧할 수도 없다. 섣불리 단체행동을 했다간 담합행위라는 올가미에 걸려 더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응찰하는 업체들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 그야말로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응찰가가 공개된 바는 없지만 낙찰가가 트랙터를 비롯한 본체는 정상가의 50% 안팎, 작업기는 5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값수준에서 농기계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농협이 이렇게 사들여서 공급하는 농기계가 일반사업용 · 은행사업용을 합쳐 18%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형성하고 있다. 농기계시장의 5분의 1을 점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더 큰 문제는 농기계유통의 극심한 왜곡현상이다. 농기계은행은 반값 낙찰을 통해 구입한 농기계를 일선 농기계취급조합에 30%이상의 할인판매 여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지속적 출혈경쟁으로 경영이 악화되어 부도 · 도산위기에 처해있는 대리점에 설상가상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리점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더 많은 할인을 위해 묘책을 강구하기 마련이다. 농기계생산업체에 직간접의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그 하나다. 대리점의 할인손실을 보전해 줄 수 없는 생산업체가 손쉽게 대안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농기계가격 인상이다. 최악의 수단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이 선의의 경쟁과 건전한 유통을 통한 농기계시장의 안정, 농기계생산업체의 적정한 수익창출과 경영안정, R&D 투자확대에 따른 제품의 품질향상과 경쟁력 강화, 우수제품 공급과 양질의 서비스를 통한 소비자보호와 수익증대 등 일련의 선순환 구조를 송두리째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신속히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단순히 농기계산업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자칫 국가적 재앙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데 유의해야 하는 것이다. 어쩌면 수년 내 농기계주권을 외국에 넘겨줘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의 농기계시장 판도를 보면 농기계산업의 생존이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수시장 위축의 장기화 속에서 외국산 농기계의 시장 잠식속도가 번개처럼 빠르다. 정부지원으로 보급되고 있는 외국산 농기계의 시장점유율이 트랙터 26.8%, 콤바인 33.9%, 승용이앙기 62.8%다. 수입산 엔진까지 포함하면 훨씬 높을 뿐 아니라 승용이앙기의 경우는 아예 국내산은 점유율 제로다. 특히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으로 농협 점유율 또한 급상승할 경우 반값공급물량 증대로 인한 농기계생산업체의 채산성악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외국산 농기계의 시장잠식 확대를 제어할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농기계주권을 외국에 내줬던 대만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의 경우 외국산 농기계 시장점유율이 50%수준을 육박할 때 백기투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국내시장 잠식속도라면 우리의 농기계주권 상실도 불과 몇 년 남지 않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시장을 몽땅 내줬을 때의 소소한 파장은 차치하고 농업에 미치는 치명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국민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농기계산업은 국가적 차원에서 유지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일환으로 첫 번째 해야 할 일이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을 중단시키는 것이다. 사업주체에 이를 맡겨서는 안 된다. 자율적으로 이 사업을 접을 리 없다. 그렇다고 결자해지 차원에서 전직대통령이 해결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할 수도 없다. 산 · 학 · 관 · 연이 하나로 뭉쳐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농협 농기계은행사업이 농기계산업에 미치는 해악이 어느 정도인지 현장확인을 통해 점검 · 평가하고 이를 근거로 예산담당부처 · 산업담당부처 · 농림축산식품부 등 유관부처와 국회 해당상임위원회등을 움직여 실현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에 건의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일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저작권자 © 한국농기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