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또는 역사적 가치가 높지 않거나 향수를 크게 느끼지 않는 한 우리는 낡은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애착을 갖는다. 그것을 욕망이나 욕구의 발로라 해도 무방하다. 이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부단히 싸우고 노력한다. 부정할 수 없는 인간본성인 것이다. 이런 욕망이 없다면 인간의 존재가치도 없는 게 아닐까.

끊임없이 개혁을 부르짖고 혁신을 시도하는 것 또한 지향하는 이 같은 욕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며 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우리 농기계산업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농본국이면서도 인력과 축력에 의존해야 했던 낙후되고 취약한 영농방식을 농업기계의 쉼 없는 개발노력과 혁신을 통해 현대식 과학영농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혁신노력이 비록 100여년 전통의 선진 농업기계 메이커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간단없는 기술개발로 역량을 강화하여 자랑스러운 우리 농업기계가 이제는 세계무대에서 당당히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게 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국내 농기계산업이 욕망충족의 절대요소라 할 수 있는 열정과 의지, 추진력이 소멸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물론 국내 농기계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른데다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방관자적 정신행태여서는 어떤 경우라도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다. 남의 힘을 빌려 얻고자 하는 것을 부분적으로 채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기욕구를 전적으로 남이 채워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다소 힘에 겹고 부치더라도 강력한 투지로 자구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농기계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취약점은 경쟁력이다. 농업기계의 품질·가격 어느 면에서도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 치이고 후발국에 쫓기는 샌드위치 형국에 갇힐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예컨대 기술력을 앞세운 일본산 농기계는 국내 상륙 불과 몇 년 만에 상당부분의 시장을 잠식했으며 후발 중국·인도 등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우리의 해외 잠재시장에 물량공세를 퍼 부으면서 선점을 꾀하고 있다. 선진기술을 능가하는 기술개발에 진력하는 방법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핵심기술을 보유하기만 한다면 가격경쟁력은 능히 확보할 수 있다. 코스트 다운이 가능한 때문이다.

문제는 R&D 재원확보다. 국내시장의 장기적 제반 악재로 경영압박을 받고 있는 농기계생산업체 스스로 이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산업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한 최악의 상황에서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막대한 R&D재원을 조달한다는 것은 천지개벽을 하지 않는 한 실현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따라서 진로를 바꿔 보는 것이다. 정부를 활용하는 것이다. 올해 정부의 R&D 예산은 19조원을 육박한다. 이 가운데 가용 R&D예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기만 한다면 연구시설은 공동연구 장비를 이용할 수 있고 연구인력도 제도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어 활용가능성은 매우 높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산업핵심기술개발사업 지원 예산 5,759억원 가운데 1,659억원을 산업경쟁력 강화와 중소·중견기업의 기술역량 제고를 위한 R&D 사업에 투자한다. 이 중 산업핵심기술 개발사업 194개과제에 1,123억원을 신규투입한다. 공모형태에 따라 품목지정형과제 89개에 347억원을 지원하고 지정공모형과제 105개에 776억원을 지원한다. 현재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을 통해 접수가 진행중이다. 중소기업청의 경우도 올해를 중소·중견기업 R&D성과 제고의 원년으로 삼고 기술개발지원사업 예산 9,429억원을 투입한다. 창의·도전적 우수과제를 발굴하여 사업성공률을 높이고 수출·고용활성화를 기하겠다는 것이다.

산자부는 더불어 연구시설의 공동활용장비에도 매년 꾸준히 R&D예산을 투자하여 전체 연구개발장비의 60%에 해당하는 1만5,500여대의 공동활용장비를 확보하고 활용문호를 열어두고 있다. 산자부는 중소기업 연구인력지원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산자부·미래창조과학부·중소기업청으로 분산돼 있던 연구인력 채용 지원사업을 산자부로 통합하여 올해 지원인력을 1,100여명으로 지난해보다 500명 가까이 늘렸다.

정부의 이같은 R&D관련시책은 재원조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희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농기계산업에는 아직 수혜사례가 눈에 띄지 않는다. 도전을 했는데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지, 전혀 도전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물론 이 또한 개별기업이 과제를 개발하고 심사과정을 패스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실패가 두려워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이는 기업을 경영할 의지가 없음에 다름 아니다. 개별기업으로서 도전이 어렵다면 뭉치는 길 밖에 없다. 예컨대 우리가 주창하고 있는 컨트롤타워를 조속히 구축하여 창의적·도전적 기획도 하고 농기계산업의 지속적 발전과 R&D 집중투자 당위성을 설파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사력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올해를 농업기계 R&D 올인의 해로 삼고 이에 집중하여 농기계산업이 국가의 미래 먹거리로서도 확고한 기반으로 다져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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