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일 한국농업기계학회 정책위 위원장

세계 경제는 글로벌 체제로 촘촘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농기계산업 분야는 대표적인 글로벌 비즈니스의 영역이 되었다. 글로벌 농기계 시장에서 경쟁의 본질은 제품의 성능, 품질, 가격 뿐 아니라 브랜드 전략이 필수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지금처럼 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을 변화시키는 세상에서 시장의 경쟁은 과거보다 더욱 새로운 가치와 기술에 대한 비전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경영철학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철학을 담아내는 브랜드를 갖지 못한 상태로 글로벌 시장에 나간다는 것은 소위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는 시대적 트렌드에 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맞게 될 수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기업들이 부적절한 경영 정책으로 하루아침에 막대한 기업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의 생존법칙이다. 글로벌 시대의 고객들은 브랜드의 평판에 민감하며 자신의 선택이 글로벌스탠다드에 부합되기를 원하고 있다. 

 

농기계산업은 대표적 글로벌 비즈니스 영역
글로벌 경영체제, 강력한 브랜드파워 필요 
고객과 소통하는 로컬 브랜드 전략 갖춰야

우리나라의 농기계산업은 이제 10억 달러 수출을 넘어서 새로운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률 측면에서는 아직도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농업기계 분야의 글로벌 일류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대개 10%대 수준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우리나라의 농업기계 생산 기업들의 경영 내용에서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아 보인다. 글로벌 경영 체제를 수립한다는 것은 우리의 제품에 대하여 글로벌 시장의 고객들이 인정할 수 있고, 그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글로벌 가치관을 존중하고 있으며, 글로벌 시장의 동향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필요로 한다. 

농업의 가치가 식량 생산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사조와 시장 환경이 만나서 발생하고 있다. 첫 번째 트렌드는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환경파괴에 대한 반작용으로부터 환경보호에 대한 가치공유의 발생이었다. 두 번째 트렌드는 미국과 유럽 진영 간의 무역 갈등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규모의 열세에 있던 유럽이 농업 보호 정책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농업가치들에 대한 인식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농업의 가치들이 글로벌 가치관으로 발전하였다. 유엔에서 2015년에 제정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의 다양한 가치들과 새로운 농업가치들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글로벌 가치관들은 다른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들보다도 농업관련 기업들의 기업 가치와 더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기계 생산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과 고객가치를 탐색하고 자신들만의 기업 가치를 주창하고 싶다면 이러한 분야들에 대하여 깊은 성찰과 연구가 필요하다. 

세계 농업기계 시장은 2013년 이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농기계산업 분야도 최근 몇 년간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우리나라의 농기계기업들의 경영실적은 이미 국내시장보다는 수출시장에 의해서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수출의 부진은 우리나라 농기계기업들의 경영압박으로 나타나게 된다. 세계 농기계 시장은 지속 성장할 것이지만 상대적으로 국내 농기계 시장은 대체수요의 시장으로 정체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2018년 우리나라의 총경지면적은 2000년 대비 15.5% 감소했다. 또한 농가 수는 26.2% 감소했으며, 농가인구는 42.6% 감소했다. 따라서 신규수요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서서히 대형화 및 고성능화 하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국내시장의 흐름은 외국의 글로벌 농기계 기업들에게는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위기 발생의 급소로 작용할 수 있다. 효율적인 기술개발과 경영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필수적인 국내 시장을 외국기업들에 의해 큰 폭으로 침식당하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자칫하면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무사안일주의가 잘못 작용하면 국내 여타 부문의 수출을 위한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걱정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글로벌 농기계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이미 5% 대를 넘어섰으며 막대한 이익잉여금을 쌓아놓고 있다. 

현재의 국내 시장 상황을 돌아보았을 때 국내 농기계기업들의 안일함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국내 농업의 기계화 달성과 농업 보호라는 정책의 그늘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창의적으로 정의하는데 안일했으며 패스트 팔로우어(Fast follower)로서 수출시장을 개척하면서 좁은 성장에만 매달리는 안이함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우리의 농기계 시장을 공략하는 선진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경영체제를 갖춘 상태이며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기계기업들이 이런 상황에서 대응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우리만이 소통할 수 있는 로컬(Local) 전략의 개발이다. 그래서 더욱 국내와 수출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브랜드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 곡물의 생산, 이용 및 재고량 추이 변화(FAO)<br>
세계 곡물의 생산, 이용 및 재고량 추이 변화(FAO)

향후 세계 농기계 시장의 전망은 갑자기 불확실성의 그림자가 짙어지는 분위기이다. 2019년 10월만 해도 2018년부터 서서히 해빙기가 도래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견디면 또다시 2000년대 초와 같은 수출 호경기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해빙기에는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 FAO에 의하면 2019년 12월의 세계 곡물 재고 예상치가 지난달보다 1,400만 톤이 증가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2013년 후반기 이후 세계 농기계업계를 괴롭혔던 국제 곡물가격의 저가 흐름이 더 길게 지속될 것을 예상케 하는 전조 현상이다. 글로벌 경제의 흐름은 전 세계적인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경기 활성화로 반응하지 않는 상태로 가고 있으며 금리 조정 여유도 거의 소진한 상황이다. 단지 미국의 불안정한 경기 호황에 모두 기대고 있는 형상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1차 합의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패권 경쟁의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데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다. 그리고 미국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은 국제 유가를 자극하고 있어서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우리 모두 2020년 즈음의 불안정한 해빙기를 잘 견디고 자신의 가치를 창의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앞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농기계기업들이 강력한 글로벌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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