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칼럼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 본부장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 본부장

삿포로 눈축제로 잘 알려진 북해도는 일본에서 본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버려두었던 원주민의 땅 북해도를 일본에 편입하고 미국 농업학자들의 지원을 받아 1869년부터 100년에 걸쳐 본격적인 개간을 진행하였다.

농업적 관점에서 북해도는 일본 본토와는 확연히 다른 지역이다. 긴 겨울날씨로 인해 경작가능시기가 5월에서 10월까지로 짧고, 여름철 평균기온은 23도로 본토보다 매우 낮다. 남한보다 조금 작은 매우 큰 섬이지만 인구는 600만 명에 불과하다, 북해도 농업인 1인 가구의 평균 경작면적은 19헥타르로 일본 본토의 14배나 된다. 넓은 경작면적과 짧은 경작시기로 북해도의 농업은 일찍부터 기계화로 발전해 왔고 이는 일본의 농기계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오늘날 북해도는 일본 경작가능면적의 1/4를 차지하고 있고 쌀과 감자, 낙농에서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농업 생산지역이다.

북해도의 규모에는 미칠 수 없지만 한국에도 대규모 기계화에 기반한 조방농업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 있는데 바로 간척지이다. 한국에서 간척지 조성은 1965년부터 주로 부족한 논과 쌀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현재는 쌀이 충분하기 때문에 쌀 이외의 대체작목을 산업적으로 재배할 수 있는 지역으로 용도가 바뀌고 있다. 간척지는 필연적으로 농업 조건 불리지역이다. 숙전화와 제염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농업용수 부족으로 고온, 가뭄 위험에 취약하며 잔류염에 의한 염해 가능성과 바닷물에 의한 수해 위험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간척지는 지금까지 한국농업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조방농업을 제대로 전개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북해도 농업이 일본의 농기계 산업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것처럼 한국의 농기계 산업을 발전시킬 잠재력의 땅이기도 하다. 

간척지 농업의 발전은 국가적으로 지속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장기적 과제이다. 적합작물 품종 선정 및 재배법 개발, 간척지구별 작부체계 및 최대생산기술 개발, 대규모 간척지 맞춤형 농기계 개발, 재해대응 피해경감 기술개발 등을 위한 별도의 연구사업과 연구조직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WTO 개발도상국 지위 상실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상실하면 우리농업도 근본적 체질변화가 불가피하다. 자급자족형 농업을 산업형 농업으로 전환하는 산업화의 길을 걸어야 하고, 농업과 농민·농촌을 분리하여 접근하는 정책도 필수이다. 이 과정에서 간척지 농업은 우리 농업의 산업화의 길을 안내할 가장 확실한 이정표이고, 농기계 산업을 발전시킬 탄탄한 연습장이 될 것이다. 지금은 간척지 농업과 농기계 산업의 동반발전을 위한 국가 전략을 고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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