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갑작스런 초강력 수출규제로 국가경제 전반에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농기계업계도 비상상황을 맞고 있어 보다 실효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대법원의 강제징용관련 판결 후 한일관계의 불화가 촉발되면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의 일환으로 수출규제라는 강력한 공격을 해 옴으로써 양국의 대립이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됐다. 특히 일본은 이달 초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포토레지스트·고순도 불화수소(일명 에칭가스)·플루오린 폴리이미드등의 수출규제를 강화하면서 대한(對韓) 보복조치의 포문을 열었다. 이들 반도체소재 3개품목의 한국수출액은 일본 수출총액의 약 0.001%에 지나지 않은다고 한다. 반면 한국 총수출액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5%에 달한다. 권총 한 발로 핵무기 피폭수준의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꼴이다.

더욱이 일본은 8월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한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등 모두 27개국이 지정된 백색국가중 아시아 유일의 지정국인 우리나라가 여기에서 배제될 경우 일본기업들은 1,100개가 넘는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마다 일본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간적, 경제적 부담가중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역자체의 원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다. 농업기계 부품 역시 이 덫에서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 농기계산업은 태생적으로 대일(對日) 관계에서 종속적 요소를 안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산업현대화 초기 기술 강국인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농기계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오늘날에도 핵심부품의 자체기술 확보를 하지 못함으로써 이 부문에 관한 한 이들에게 끌려가는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당시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농업기계의 연차별 국산화계획을 추진할 때 대형기종의 농기계를 생산토록 하기 위해 5개 종합형업체를 지정하게 되면서부터 농기계기술의 ‘일본기대기’가 사실상 본격화됐다. 자체기술이 전무하다시피 한 이들은 우리와 영농환경이 유사하고 상대적으로 고도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농기계메이커 구보다·얀마·이세끼·미쓰비시등을 기술파트너로 하여 국산화기반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국내 농기계산업이 나름 R&D 투자를 확대하여 부품국산화에 적잖은 노력을 해 왔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해외의존율이 높은 핵심부품 개발로 장기적인 대처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점은 그대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업계는 지난 2003년 국비 106억원, 민간현금 49억원, 민간현물 61억원등 모두 216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3개년 계획으로 농기계 부품·소재 기술개발사업을 벌였던 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동공업·국제종합기계·LS전선(당시)·미도테크·동양물산기업·세일공업등이 참여하여 트랙터용 고성능 그린디젤엔진과 트랙터용 전자제어 유압시스템, 트랙터용 HST 트랜스액슬등 핵심부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계획 마지막 년도인 2007년 개발사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긴 했으나 공동사용이라는 당초의 개발취지를 살리지 못함으로써 정부의 개발투자의지를 꺾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는 끊임없이 지속됐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문제가 숙제로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10억달러의 수출 강국으로서 이에 상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내실있는 성장을 했을 것이며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외국산 농기계의 시장잠식률을 둔화시켰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일본의 수출규제가 공포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안타개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범정부차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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