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칼럼

박주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반표준연구실장
박주영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반표준연구실장

해가 갈수록 여름이 빨리 다가오고 있다. 아직 6월 초순이지만 낮 최고 온도가 30도를 넘고 있다. 이러한 더위는 필자에게 어느 초여름을 문득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의 세상은 국내의 어느 유명 드라마에서처럼 너무나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빠른 변화 중 하나는 개인용 PC를 장만한 친구들이 자취를 감추게 된 덕택에 항상 북적이곤 했던 전산소 터미널실이 나의 전유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용 PC를 장만한 친구들끼리 PC 통신이라는 주제로 하는 새로운 세상 이야기로부터 소외되어 버렸었다. 그러던 중 당시 H사의 ‘통신이 되질 않는 PC는 반쪽짜리 PC’라는 선전 문구 아래 9,600 bps 모뎀이 설치된 최신형 386컴퓨터의 특가 판매는 나의 첫 PC와의 인연을 시작하게 하였다. PC를 구매하고 맞이한 첫 여름방학, 밤마다 거실 전화를 이용해 PC 통신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매력이 푹 빠지게 되었다. 진정으로 H사의 선전 문구에서와 같이, 나의 PC는 완전체가 되었던 것이었다. 

PC 통신은 필자에게 엄청난 정보의 풍요를 허락해 주었다. 물론 초고속 네트워크와 스마트폰을 통하여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편을 짜서 게임을 하거나 게임 아이템이 고가에 매매되기도 하는 요즈음과 비교한다면 매우 보잘것없는 수준이겠지만, 당시의 PC 통신은 필자에게 방대한 SW와 정보는 물론 사이버 세상의 많은 지인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난 어느 날 집으로 배달된 17만 원이 넘는 전화비 명세서는 필자에게 가출까지도 고민하게 했던 것이었다. 

필자가 경험하였던 PC와 통신의 융합은, 다수의 만화 캐릭터 주인공이 새로운 영화로 탄생하여 흥행을 끌어내듯, 기존 농산업과 다른 산업군의 융합이 분명히 새로운 지평선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의도로 과거사를 두서없이 적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동안 우리가 고수하였던 농산업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 같은 다른 산업군과 어떠한 형태로 융합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지 못하는 필자의 무지가 무척이나 안타깝다. 

요사이 스마트팜 분야는 단순히 통신 기술을 접목하는 것을 넘어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로봇 기술을 접목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스마트팜은 이미 농산업 분야의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한다면 스마트팜은 단지 편이성과 생산성을 높여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농산업 분야가 제조, 유통, 서비스산업 분야와 조화로운 융합을 이룬다면, 필자가 전화비로 인해 가출을 고민했었던 그때는 감히 상상하지도 못했던 요즈음의 기술 수준이나 시장보다 훨씬 더 큰 격차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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