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장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장

한국 대표기업 현대차의 매출액은 연간 약 85조원이다. 전기차 모델로 유명한 미국기업 테슬라의 연매출은 이보다 20배 적은 4조원이다. 그러나 두 회사의 기업가치는 32조원으로 비슷하다. 비슷한 예는 서비스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통가의 일등기업 롯데의 매출액은 28조원이지만 기업가치는 8조원이다. 온라인 유통기업 쿠팡의 매출은 4,000억원 이지만 기업가치는 6조원이다. 더욱이 쿠팡은 2018년 11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조원의 투자를 받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테슬라와 쿠팡의 높은 기업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 정답은 두 기업은 기존 산업의 게임의 룰을 바꾸는 선도기업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자동차 산업은 혁신의 수단으로 하드웨어 체인지를 유일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자동차 성능개선을 위해서는 부품사양과 외형을 바꾸어 모델을 체인지 했고, 소비자는 기존제품을 버리고 더 좋은 성능과 높은 가격의 신차를 구매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2008년형 BMW를 타던 고객이 차선유지 기능과 자동주차 기능이 탑재된 자동차를 타려면 기존 차를 처분하고 2015년형 BMW를 사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새 모델가격은 이전 모델보다 두 배 비쌌지만 모두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테슬라는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혁신수단으로 모델 체인지가 아닌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제시했다. 자동차를 스마트폰과 같은 ICT 기기의 일부로 접근한 것이다. 2012년 테슬라의 히트상품인 전기차 모델 S는 높은 인기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다. 모델 S의 가격은 7만 달러였다. 2016년 테슬라는 기존 모델에 자율주행 기능이 더해진 신모델을 발표했는데, 가격은 2012년 모델의 반값인 3만 5,000달러에 불과했다. ICT 산업의 핵심부품인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반도체가 매년 성능은 15% 정도 개선되지만 가격은 하락하는 특성을 전기차에도 적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테슬라가 기존 모델인 모델 S의 소유자들에게도 하드웨어 체인지가 아닌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방식으로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 업계의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는 신호였고, 자동차 매니아는 물론이고 일반고객들도 테슬라에 열광했다.

자동차 산업과 비슷하게 농기계 산업의 게임의 룰도 바뀌어 가고 있다. 농기계도 ICT기기의 일부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농기계의 성능은 내구성과 작업효율이 결정하였다. 힘 좋고 튼튼한 트랙터를 싸고 빠르게 만드는 회사가 좋은 트랙터 회사였다. 여기에 신속한 AS 네트워크가 있으면 소비자들의 만족도 높았다. 그러나 이제는 농기계도 ICT 장비의 일부가 되면서 디지털 역량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농기계가 농작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농기계에 탑재된 센서가 각종 환경정보를 수집하고 농업에 필요한 빅데이터를 구축하는 디지털 장비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서 확보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다시 농기계를 진화시키고 있고, 수집된 데이터 자체가 농기계보다 비싼 농업자산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농기계에 탑재된 자체진단 센서가 농기계 회사 본사의 관제실과 연결되어 농기계의 고장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적 수리를 제공하면서 농기계 고장으로 인한 농작업 손실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여러 대의 농기계가 서로 통신하면서 군집 농작업을 하는 시대도 이미 시작되었다. 존디어의 혁신 활동의 핵심은 하드웨어 체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농기계의 디지털 역량을 높여서 농기계 산업의 게임의 룰을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나라 농기계 관계자들도 농기계를 농업용 중장비에서 스마트 디지털 장비로 전환하는 긴 여정에 적극 참여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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