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일 (사)한국농업기계학회 정책위원장
남상일 (사)한국농업기계학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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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내수 시장에 안주하다가 실패한 사례로서 오토바이 분야가 많이 거론된다. 오토바이 분야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경우처럼 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하여 사업을 시작하였다. 몇몇의 기업들이 국내 오토바이 시장을 우점하는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농업기계 분야처럼 말이다. 이렇게 따뜻한 상황은 기업들의 객관적 시장분석 능력과 도전적 연구개발 능력의 함양을 게으르게 하고, 몇 번의 해외 진출 기회조차도 흘려보내는 부작용이 축적되게 한다.

오토바이 사업의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은 외환위기로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상황에서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여야 하는 순간 어김없이 나타났다. 당시 국내시장 1위를 하던 D사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오토바이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측했다. 소비자들의 수입이 줄면서 자동차를 포기하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자영업자 또한 늘어나면서 배달용 오토바이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에 얼마나 객관적인 근거와 전문가들의 통찰력이 뒷받침되었을지는 모르겠다. 1997년 30만 대였던 국내 시장은 1998년 14만 대로 줄어들었고, 금융위기였던 2008년을 지나면서는 9만대 수준으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객관적인 분석이 조금씩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과정에서 독이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근거 없는, 특히 의사결정 그룹의 달콤한 희망사항이다. 일견, 당시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었으니 배달용 오토바이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생각은 최소한의 합리성은 있었다. 그러나 얼마나 객관적인 내용이었을지는 의문이다. 만약 그러한 조사가 이미 경향성을 갖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그 결과는 큰 참사를 빚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이미 목적성을 갖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조사하는 측의 객관성은 매우 미묘한 문제일 수 있다.

당시의 시장 판단에서 성공적이었던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시장이 양극화되면서 대형 고급 기종의 수요가 늘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 트렌드에서 국내기업들이 접근하기에는 역부족인 부분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1990년대의 한국 오토바이 업계는 연구개발에 별로 투자를 하지 않았다. 자체 개발한 오토바이가 125CC 급이었는데 2009년경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고급 오토바이들은 이미 500CC에서 1,000CC 급의 고급 기종들이었다. 애당초 게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의사결정 그룹들이 대형화라는 막연한 설정만 있었지 디테일과 맥락을 활용할 정도의 수준에 있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시장의 심층을 흐르는 디테일과 시대적 가치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란 주로 희망사항에 머무르는 일이 많은 법이다.

일본의 혼다 오토바이의 경우를 보도록 하자. 최근 일본의 경제 동향은 ‘아베노믹스’라는 말로 압축될 수 있으며 세계적으로 득세하고 있는 경제 트렌드로서 ‘트럼프노믹스’도 있다. 모두 자국 이익 우선주의이며 자국 내에 일자리를 만드는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혼다 오토바이는 엔저 정책에 상관없이 “수요가 있는 곳에서 생산한다”는 매우 간단하고 근본적인 원칙을 지키고 있다. 비록 엔저가 유효한 힘을 발휘하고는 있지만 일본 내수가 증가하지 않는다면 자국 유턴 정책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단순 명료하다. 혼다가 생산하는 오토바이 가운데 일본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1%에 불과할 뿐이다.

한국의 오토바이 업계를 가장 아프게 한 상처는 2010년 이후 혼다 오토바이가 국내에서 보급하기 시작한 저가형 모델들의 급격한 증가세이다. 국내 오토바이와 비교하여 가격차이는 20만원 전후에 불과하다. 혼다가 생산하는 오토바이 중 일본산은 1%에 불과하니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혼다 오토바이가 어디에서 생산된 것일까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혼다의 생산정책은 ‘Made with Japan’이다.

국내 오토바이 분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농기계 분야도 ‘Made in Korea’를 넘어서 ‘Made with Korea’로 글로벌화할 수 있는 준비가 시급하다. 우리나라 농기계산업의 정책은 수출산업화에서 글로벌산업화로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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