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박사

진보경제학자 장하준 교수는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더 혁신적이다”라고 주장했다. 20세기 중반 세탁기를 비롯한 가전제품의 보급으로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경제활동이 크게 확대되면서 노동구조가 바뀌고 남성중심의 문화에도 대변혁이 시작됐었다는 설명이다.

비슷한 이유로 “트랙터가 자동차보다 더 혁명적인 발명품 일 수 있다”. 트랙터의 보급으로 농업의 규모화와 집중화가 가능해졌고 인간은 광활한 농토에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랙터의 발전은 농업에서 잉여 노동력이 생기게 했고, 이는 제조업과 서비스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까지 농업의 규모화와 집중화는 규모의 경제를 위한 상식처럼 여겨져 왔다.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게 북·남미, 호주, 연해주, 중앙아시아 등 초대형 농지에서 초대형 농기계를 활용하는 중앙집중형 조방농업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농기계는 규모화된 농업의 첨병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중앙집중형 농업의 정반대쪽 끝에서 새로운 농업형태가 싹트고 있다. 바로 ‘분산농업’이다. 분산농업은 아주 작은 공간을 활용하는 농업형태로 뒤뜰을 이용한다는 의미에서 ‘백도어(back door) 농업’으로도 불린다. 물론 오래전부터 실내농업, 도시농업, 주말농업 등 취미농 수준의 농업이 있었지만 중앙집중형 직업농을 대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대량생산된 농산물의 가격이 워낙 싸고 취미농의 기술수준과 생산품질이 직업농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업기술과 농기자재가 발전하면서 미래에는 분산농업이 새로운 농업형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마치 IT산업이 메인프레임 중심의 중앙집중형에서 인터넷과 모바일 중심의 분산형으로 진화한 것과 유사한 모델이 농업에서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분산농업의 핵심은 농기자재이다. 센서가 고기능화되고 저렴해지면 취미농도 상업농 수준의 품질 높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완전 자동화된 농산물 생산키트가 냉장고처럼 가정과 식당, 학교, 회사 등에 보급되는 날도 점차 다가올 수 있다. 이미 중동 같은 농업불리국가들은 분산농업이 자국농업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분산형 마이크로 농업을 위한 농기자재에 큰 관심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한다.

세상은 돌고 돈다. 아주 오래전 가족농 중심의 개별생산이 주류이던 농업이 중앙집중형 농업으로 발전했듯이 기술의 발전은 농업을 다시 분산형으로도 회귀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중앙집중형 농업이라는 경기장에서는 우리 농기자재 기업은 세계적 선수가 되기 어려웠다. 우리가 집약농업에 특화된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산농업과 마이크로 농업이라는 새로운 경기장이 생기면 우리 농기자재 기업도 금메달을 따는 특급선수로 성장 할 수 있을 것이다. 분산농업과 마이크로 농업이 우리 농기자재 기업들의 미래 블루오션이 되면 좋겠다.

jrlee@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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