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수출은 농기계 산업을 성장 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우리나라는 농기계 내수시장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에는 너무 작다. 특히 밭작업 농기계는 제대로 된 시장 자체가 형성되기 쉽지 않다. 논농사와 달리 밭농사는 대상 품목, 농작업 단계, 경지여건에 따라서 각각 다른 기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다품종 소량 생산체계로 가야한다. 그래서 밭작업 농기계는 개별 기계별로 개발비는 많이 드는 반면 수요가 적어서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 기업입장에서는 개발 원가를 감당하기도 벅차며, 농민입장에서는 가격이 비싸 구입이 쉽지 않다. 정부가 일정부분 지원을 하고 있지만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고 부작용도 많다. 결국 유일한 활로는 수출을 통해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보통 제품 수출이라고 하면 우리 땅에서 연구개발을 잘 해서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만들기만 하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우리의 수출 효자품목이 모두 그렇게 해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기계를 비롯한 농자재, 종자, 농약, 비료 등 농업 투입재의 경우에는 일반 제조품의 수출전략과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농업 투입재의 수출 과정에서 국내에서의 연구개발은 그야말로 최소한 일뿐이다. 해외에서의 연구개발과 제품시연, 농민노출, 현지교육 등 해외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더 많다. 나라마다 기후조건, 토질, 작목특성이 다 다르고 농사법과 농민의 요구사항도 달라서 국내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제품과 전달경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식양토질의 우리나라 논은 마른 땅에서 벼를 절단하고 볏짚을 묶지만, 무논에서 벼농사를 하는 동남아에서는 물속에서 벼를 절단 한 후 볏짚은 물속에 눌러 버리고 낱알만 수확한다. 자동차라면 우리나라에서 좋은 자동차가 해외에서도 좋은 차가 되지만, 농기계의 경우에는 국내에서 아무리 좋은 농기계라고 해도 해외에서는 지역에 따라 쓸모없는 고철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까지의 농기계 수출 정책과 연구개발 정책은 반성할 점이 많다. 농기계 수출 정책이 국내에서의 연구개발에만 집중하고, 수출국 현지에 특화된 연구개발은 매우 소홀했기 때문이다. 해법은 지금이라도 해외테스트베드와 국제공동연구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다. 해외테스트베드란 수출거점마다 일정 면적의 토지를 확보하고 필요시설을 갖추어서 현지에서 연구개발, 제품전시, 농민교육, 판매하는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해외테스트베드에서는 농기계를 비롯해 농자재, 종자, 비료, 농약 등 우리나라에서 수출할 수 있는 농업 투입재를 한 번에 취급할 수 있다. 농기계 수출의 가장 큰 어려움인 AS 체계도 해외테스트베드에서 많이 해결할 수 있다. 제품 현지화를 위한 연구, 현지농민의 애로사항 해결, 인허가를 위한 시험연구는 해외테스트베드에서 국제협력연구로 추진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해외테스트베드는 지역적 필요와 특성에 따라서 농기계, 농자재는 상설방식으로 운영하고 종자, 농약 등은 비상설로 운영할 수도 있다.

해외테스트베드는 개별기업이 하기는 어렵다. 투자금액도 많이 필요하며, 성공의 효과가 특정 기업에만 독점되지 않는 공공재적 성격이 크기 때문이다. 개별기업이 수출바이어의 요구에 맞추어 파편적으로 시험포를 운영하고 인증과 등록에 부담하는 비용과 노력을 해외테스트베드로 모은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동남아, 중앙아시아, 남미, 연해주 등 우리 농기계와 투입재 수출이 유망한 지역과 새로 시장이 형성되는 나라마다 차근차근 확대하면 된다.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총괄하고 계획에 따라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주무부처와 예산부처, 국회가 힘을 모아 실행해야 할 것이다.

농기계, 농자재, 종자, 비료, 농약은 수출관점에서는 완전히 다른 상품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농·식품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묘한 연계성을 갖는다. 하나의 상품군이 선택되면 다른 상품군은 연관 선택되는 경향성이 있다. 농기계를 수출하면 다른 제품도 훨씬 수월하게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농업 투입재 수출이 초기에는 매우 어렵지만, 일단 수출시장에서 선택을 받으면 서로 상승작용이 발생하고 반복적 수출이 이어지는 것도 개별 투입재 사이의 연계성 때문이다. 따라서 농기계뿐만 아니라 농업 투입재 수출을 위해서는 해외테스트베드의 확대가 지금 시점에서 꼭 필요하다.

이제 우리나라의 농업은 수출 경쟁력이 곧 산업 경쟁력이다. 농업 기술수출은 어려운 도전이지만 그만한 가치와 잠재력이 있다. 현재 종자와 비료, 농약은 규모는 작지만 전 세계에서 점차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고, 농기계는 이미 세계시장에서 1조원 넘게 수출되고 있다. 농자재도 동남아와 개도국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시장을 확대 중이다. 해외테스트베드와 국제협력연구를 통해서 우리 농산업 수출이 진일보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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