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제로섬 게임이다.


나주배가 잘 팔리면 성환배가 덜 팔린다. 국민소득이 1만불일때 하루 3끼를 먹다가 국민소득이 5만불이 되었다고 하루 5끼를 먹지는 않는다. 농업기술이 발달해서 생산량이 늘어나면 농산물가격과 농가소득은 오히려 하락한다. 농업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어느 나라의 농업도 무작정 성장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국민소득이 늘어날수록 농업 성장률은 제로(0)에 가까워지고 농민의 수는 줄어든다. 농업 이외의 대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되면 농업정책에 중요한 변곡점이 오는데 한국이 지금 이러한 시기에 진입하고 있다.


이 시기 농업정책의 중요한 변화는 첫째 농업 전후방산업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개도국 농업시절에는 종자, 비료, 농약, 농기계, 농자재 등이 농업생산을 지원하는 보조산업이지만 선진국이 될수록 종자, 농기계 등의 후방산업은 독립적인 산업으로 중요해진다.


몬산토, 신젠타, 존디어, 구보다 등처럼 선진국의 농업 후방산업 기업들은 농업생산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도 엄청난 수익을 창출한다. 농업 전방산업인 식품업과 농업의 연결고리가 중요해지면서 농업정책이 생산정책에서 먹거리정책으로 확대개편 되는 것이 이 시기부터이다.


둘째는 수출확대 정책이다. 제로섬 게임인 농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수출이다. 내수만으로 농업생산 확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농산물은 물론이고 종자, 농기계, 농자재, 가공식품 등 농업가치사슬과 연계된 모든 영역에서 수출이 필수가 된다.


셋째는 가장 어려운 개념인데 농업관련 다양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이다. 선진국일수록 농업의 진정한 가치는 다양성에서 나온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는 식량생산이 농업의 최고 가치이다. 그러다가 식량의 양적확보 시기가 지나면 품질향상 시기를 거쳐 다양성의 시기가 온다.


식(食) 다양성, 종(種) 다양성, 생태(生態) 다양성 등 다채로운 측면에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농업의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농업적 다양성이 확보되면 국토 환경도 건강해지고 국민 삶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지역적 특성이 살아나면서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도 농업적 다양성이 주는 선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닭의 90%는 단일품종에 무게도 800그램으로 획일화 되어 있다. 반면에 농업 선진국인 프랑스에서는 수백 종이 넘는 각양각색의 닭이 지역 곳곳에서 건강하게 생산되고 고르게 소비된다. 다양성은 생산자인 농민과 지역의 특색을 살리고 국민에게는 폭넓은 선택권으로 문화가 되고 행복이 된다. 그러나 다양성은 돈이 들고 그 돈은 결국 국민이 지불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이해와 공감이 꼭 필요하다. 다양성의 가치를 인정하고 마땅히 지불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이제 농기계, 농자재산업의 경쟁력은 곧 농업의 경쟁력이다. 미래의 농업은 시설과 장비, 데이터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농기계, 농자재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도 잘 어울린다. 수출 측면에서도 농기계는 세계시장에서 1조원 넘게 수출하고 있고, 농자재는 동남아와 개도국을 중심으로 시장을 확대 중이다. 그러나 다양성이 더욱 보완돼야 한다.


밭농업기계화, 스마트팜 등 현재 추진 중인 농업정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농기계와 농자재를 개발하고 국내외 시장에 안착시켜야 우리 농업의 미래가 있다. 시장과 정부가 역할을 나누어 농기계, 농자재 산업을 미래산업으로 강력하게 육성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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