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농기계 선구자로 추앙받아오던 창업주 고(故) 김삼만 선대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농기계산업 발전과 농업기계화에 일생을 바쳐온 그가 유명을 달리 함으로써 모든 농기계인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전근대적 농업기계환경을 극복하고 농기계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헌신한, 농기계 역사상 근·현대를 관통한 몇 안 되는 큰 별을 잃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인의 대표이사 시절 인터뷰를 했던 필자에게는 그 때의 고인 모습이 떠올라 남다른 감회를 준다. 고인의 첫인상은 다정다감한 여느 이웃집 형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고인이 조곤조곤 얘기를 이어 가다가도 카메라만 들면 웃음기가 사라지고 경직된 모습을 보였고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활짝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평소 호탕하게 웃는 일이 드문 어른’이라는 측근들의 후문에 실소를 보내기도 했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 고인을 보내면서 흔치 않게 대소(大笑)를 짓던 고인 얼굴이 마치 면전에서 대하듯 선명하다.


고인에 대해 느낀 또다른 이미지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었다. 굳은 속내를 드러낸 사례들이 많지만 특히 진주공장의 대구 이전이나 한국농기계학회 태동에 깊이 간여한 점 등을 빼놓을 수 없다. 유연함보다 꿋꿋함이 더욱 강했던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대동공업의 진주본사는 선대회장의 ‘농업기계화를 통한 사업보국’이라는 창업정신이 뿌리깊게 배어 있는 곳이다. 그런 연고지를 과감히 등지고 1984년 22만여㎡의 대규모 대구공장을 준공하여 새둥지를 틀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으로 ‘대동’ 의존도가 높았던 10만여명의 진주시민을 버리는 일이었다. 전체시민의 절반을 훨씬 넘는 시민의 생계문제가 엮여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동’ 이전반대시위는 그칠 줄 몰랐고 심지어 도(道)까지 나서 인근지역에 대체용지를 제공하고 만류와 회유를 했지만 끝내 고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 여파로 진주공장부지를 시(市)가 공원부지로 묶어 버렸고 공장부지 매각대금으로 대구공장 건립비를 충당코자 했던 당초 계획이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이 역시 잘 극복해 냈다. 고인의 강단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동 대구시대는 결코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산·학·관·연의 한 축으로서 농기계산업의 버팀목이 돼주고 있는 한국 농업기계학회가 고인의 헌신적이고 획기적인 지원이 없었더라면 탄생되지 못했을 수 있다. 이는 지난 2001년 7월 한국농업기계학회 창립 25년 기념식에 참석했던 원로 농업기계 교수들이 확인해 준 사실이다. 농업토목학회와 농공학회가 통합하여 한국농업기계학회로 발족된 시기가 1976년이다. 당시만 해도 농기계생산이라고 일컫기도 민망할 정도로 농기계생산업체 규모가 영세하고 열악했다. 그 와중에 고인은 농기계산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학계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회 탄생여부를 좌우할 정도였다니까 짐작컨대 거액임은 분명해 보인다. 어떻든 한국농업기계학회의 기여도로 볼 때 고인의 선택이 탁월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고인의 이와 같은 배포와 뚝심은 어디서 나왔을까? 선대의 유지 이행에 충실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의 발로일 수도 있고 미래지향적 기업경영을 위한 철저한 자기계발과 수련에 의해 강인성을 체질화한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진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대학과 동경공업대학을 졸업·수료하는 등 공업경영을 수학했고 대동공업 입사 후에도 독일과 일본등지에서 수년간 기술연수과정을 거치면서 경영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향상하는데 온 힘을 쏟아 왔다.


고인은 1975년 대동공업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래 줄곧 선두주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고수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일궈냈다. 취임 시 2,000억원이던 매출을 5,800억원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1억원에 지나지 않던 수출 또한 2,000억원으로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괄목할 성장세를 시현했다. 고인은 한편 대표이사 취임 초 한국농기계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농기계산업을 리드하기도 했다.


고인은 참 경영인으로서의 교훈과 사회적 공헌에 큰 족적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생전 열정적으로 추진해왔던 모든 일들은 다 잊고 이제 편히 쉬기만을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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